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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두바퀴 탈것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데이비드 V. 헐리히 (알마,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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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스 암스트롱 (Lance Armstrong) / 사이클선수
출생 1971년 9월 18일
신체 키180cm, 체중75kg
팬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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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텍스트는 위 책을 기초로 비니루가 작업을 하고 있는 내용의 일부입니다.

인간이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지 250년이 지났다. 자전거는 원래 귀족들의 오락거리나 서커스 도구였다. 처음 선보였을 당시에는 경망스러운 물건으로 인식되어 세인들의 눈총을 받기도 했고 때로는 금지 품목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우리 삶에서 중요한 교통수단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두 다리로 벌 갈아 힘을 줘서 움직이는 단순한 장치로 출발한 자전거는 조금씩 발전을 거듭하면서 지금은 당연시되는 페달과 핸들, 그리고 고무 타이어 등 핵심부품을 갖추었다. 그러나 자전거의 기본적인 형태인 두 바퀴 구조는 250여 년 전 자전거가 탄생한 이후 오늘날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을 만큼 단순하다. (3바퀴와 4바퀴의 자전거도 등장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도태되었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자전거는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고마운 장비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친환경 운송수단으로 각광받아 혼잡해진 대도시의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한 자전거는 대기 오염의 주범인 일산화탄소를 내뿜지 않기 때문에 건강한 생활습관을 촉구하는 시위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자전거는 250여 년 전 처음 등장이후 지금까지 두 개의 바퀴를 이용한 기본적인 구조와 형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단지 페달의 발명과 브레이크, 핸들, 고무 타이어 등이 개발되면서 그 기능이 혁신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는데 형태상으로 볼 때 세 번의 획기적인 변화를 나타낸다.


그 첫 번째는 1860년대 본세이커의 시대로 미쇼형(Michaux) 자전거의 탄생이다. 이전까지는 두 바퀴가 설치된 형태로 사람이 발을 이용해 바닥을 차며 이동했으나 “페달”의 발명으로 인해 자전거 기능에 새로운 변혁이 일어났다. 즉 자전거의 안장에 올라 페달로 바퀴를 움직이며 이동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는 하이 휠(High wheel)의 시대로 자전거의 앞바퀴가 매우 큰 형태의 자전거가 등장한다. 이 불균형의 자전거는 페달자전거가 등장한지 10여년 후에 나타났으며 그 형태의 특이함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발전했는데 가장 큰 특징은 이즈음 바퀴의 프레임이 나무에서 금속 튜브 프레임으로 바뀐 점이다.


이 자전거는 아름다웠지만 이용하기에 매우 불편할 뿐 아니라 속도를 낼 때면 자전거의차체가 앞으로  넘어지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최대의 단점이었다.


이후 1880년대를 거치면서 자전거는 다시 두 바퀴의 사이즈가 동일한 형태로 돌아오고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다양한 기능이 더해지면서 발전한다. 이른바 세이프티(Safety) 자전거 시대가 된 것이다. 페달과 체인이 연결되고 제동장치가 발달했으며 던롭의 타이어가 고안되면서 점차 오늘날 자전거의 원형이 결정되는 시기가 된다.


 

[자전거의 역사 _ History of the Bicycle]


1696년  “수학과 물리학의 재현” - 프랑스 수학자 자크 오자낭(Jacques Ozanam)

스스로 움직이는"self-moving" 탈것은 바람이나 증기를 이용하여 움직이는 것과는 달리 모든 자원 가운데 가장 풍부하고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자원 즉 인간의 의지력으로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유용한 탈것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1774년 런던의 언론 - 오벤덴(Ovenden)씨가 수공으로 제작한 마차는 시속 10킬로미터로 달린다고 보도 (유니버설 매거진 Universal Magazine - 1774년 12월 호)


1779년 프랑스의 발명가 장 피에르 블랑샤르(Jean-Pierre Blanchard)가 마슈리에 (M.Masurie)라는 사람의 도움으로 마차를 만들었고 그는 하인과 마차를 몰고 파리의 루이 15세 광장을 돌아다녔다. 그들은 마차를 몰고 베르사유까지 약 19킬로미터를 운행했다. 이것이 인간의 힘으로 움직이는 탈것을 이용한 장거리 여행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주르날 드 파리 : Journal De Paris - 프랑스 최초의 일간신문)


1790년 프랑스 귀족 콩트 메데 드 시브락(Conte Mede Sivrac)은 새로운 탈거리 “슈발 드 보아(Cheval de cois(목마)”라는 장치를 만들었다. 이후 이 장치는 속도에 대한 인간의 오랜 열망을 담아서 “셀레리페르”(célérifère)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 셀레리페르 ; 라틴어로 빠르다는 뜻의 “셀레레(Celere)”와 운반한다는 뜻의 “페로(Pero)”가  결합된 말로 “빨리 달리는 기계”라는 의미다.


시브락 백작이 셀레리페르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지 않자 대장장이나 수레바퀴 제작자, 말발굽 제작자들이 앞 다퉈 이를 복제해서 일반인이 타기 쉽게 개조했다.


1813년  카를 폰 드라이스(Karl von Drais) 독일 명문가출신으로 바덴 대공국의 산림청 책임자. 그의 마차설계는 독일 및 바덴 공국 특허 요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음 - 그는 1817년까지 다양한 형식의 “말없는 마차”를 개발한다. 그리고 그의 요상한 기계는 “달리는 기계(Lauf-maschine, running-machine), 드라이지네(Draisinne), 벨로시페드(Velocipede)등으로 불리며 알려졌다.


* 1810년대 중후반 유럽에서는 “벨로시페드 라이더”를 일반적으로 관심 끌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즉 허영 덩어리로 인식했다.


1818년 1월 바덴정부는 드라이스에게 최초의 특허권을 승인했다. 한 달 뒤 드라이스는 하인 루이 디네(Louis Dineur)의 이름으로 프랑스 특허권도 획득했다.


1818년 4월 드라이스는 자신의 작품 벨로시페드를 타고 만하임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약 80킬로미터 이상을 여행했다. 하지만 이미 언론들은 흥미를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 결국 드라이스의 드라이지네 혹은 벨로시페드는 단순한 호기심을 좋아하는 사람의 장난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1818년 9월 이탈리아 : 드라이지네를 비롯하여 그와 유사한 기계장치를 야간에는 타지 못하게 하는 법령이 선포되었다. 경찰들은 벨로시페드라고 불린 이 기계를 단속에 나섰다.


1818년  12월 영국런던 : 마차 제조업자인 데니스 존슨(Daenis Johnson)에 의해 개량된 철제 벨로시페드 “호비호스”(Hobby Horse)를 개발한다. 독일의 드라이스의 드라이지네보다 호비호스는 디자인이 훨씬 세련되고 무게도 40~50파운드쯤 가벼웠다.


1819년 2월~3월 - 존슨은 롱 에이커(Long Acre)에 있는 자신의 작업장 근처에 자전거 학교를 열었다. 수업료는 1실링이었다. 벨로시페드는 대당 8파운드라는 고가에 주문 제작했다.


1819년 영국 곳곳에서 벨로시페드의 실용성을 증명하기 위한 대회가 개최되었으나 지속적인 관심을 끄는 데에는 실패했다. 존슨은 공공장소에서 호비호스를 타는 여성을 등장시킨 포스터를 인쇄하기도 했으나 이 같은 그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1819년 6월 미국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New Haven) - 벨로시페드가 정당한 평가를 받은 유일한 도시로 평가된다. 존 믹스(John Mix)라는 사람은 예일대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벨로시페드 대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뉴 헤이븐은 엄청난 수의 벨로시페드가 거리를 활보하는 도시가 되었다.


1821년 영국    루이스 곰페츠(Louis Gompertz) 호비호스의 앞바퀴에 방향을 조절할 수 있는 조향장치인 "핸드 드라이브“를 장착한다.


1839년 스코틀랜드 대장장이인 커크패트릭(Kirkpatrick MacMillan)은 발로 땅을 차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전거를 발명했다. 뒷바퀴를 연결한 페달을 개발한 것으로 초보적인 수준이었으나 1845에 토마스 매컬(Thomas McCall)에 의해 시판된다.


1842년 6월 커크패트릭은 글래스고에서 자신이 만든 자전거를 대중에게 선보이던 날, 어린소년을 치는 바람에 맥밀런은 보상금까지 내는 불미스러운 일을 당한다. 이후 그는 더 이상 새로운 탈것을 개발하지 않았다. 그리고 특허도 받지 못했으나 그이 자전거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전거의 중심을 잡는 데 중점을 둔 모델로, 이후에 개발된 다양한 자전거의 기초가 된다.”

1861년 (1855년 설도 있음)      페달의 발명

프랑스의 마차 수리공 피에르 미쇼(Pierre Michaux)와 그의 아들 에르네스에 의해 처음 발명했다. 피에르 미쇼는 손님이 맡긴 드라이지네를 수리하다가 페달을 발명하게 됐고 이후 미쇼부자는 네 부분으로 구성된 이른바 미쇼형 자전거(Michandine)를 개발한다.


1864년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르페브르(Alexandre Lefebvre)가 미국에서 제작한 자전거로 그는 이 모델의 설계를 이미 1843년에 했으며 제작된 실물 모델은 현재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1866년  프랑스 피에르 랄레망(Pierre Lallement)은 벨로시페드 모델을 개발해 특허를 받은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 랄레망은 페달을 발명한 미쇼부자와의 특허권 분쟁을 겼었다.


        영국의 존 볼트비 브룩스 John Boultbee Brooks는 말 안장 제조업자이던 아버지 밑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자전거 안장을 생산하게 되었다. 브룩스Brooks 상표를 부착한 안장은 현재까지도 자전거 시장에서 독보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1868년 프랑스 클레망 아데르(Clement Ader)는 승차감을 높이기 위해 자전거 바퀴에 고무 타이어를 씌웠다. 이는 1845년 R.W톰슨(R.W.Thomson)이 자전거에 타이어를 장착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한지 20여년이 지난 후였다.


1869년 미쇼부자는 은행가 르네 올리비에(Rene Olivier)와 손잡고 콩파니 파리지엔(Compagnie Parisienne)을 설립해 자전거 생산 공정을 최초로 산업화 했다. 이후 미쇼부자는 자신들의 특허권만을 믿고 회사지분을 모두 처분했고 1879년 두 부자가 다시 자전거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콩파니 파리지엔은 이들에게 높은 벌금을 물렸다. 결국 미쇼부자는  페달의 발명가이자 최초로 자전거의 대량생산을 시작한 인물로만 기억된다.


-----  대략 이시기까지의 자전거 즉 벨로시페드를 영국인들은 “본 쉐이커(Born shaker:뼈를 뒤 흔드는 기계)”라고 조롱 거렸다. 그들은 페달과 미쇼형 자전거가 프랑스에서 개발된 것에 대해 매우 불쾌했다. 그래서 영국산 자전거의 우수성을 이야기 하ㅣ기 위해 프랑스산 자전거를 본 쉐이커로 불렀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존하는 본 쉐이커 자전거는 얼마 남아있지 않은데 그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자전거를 녹여서 무기를 만드는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1870년 영국    자전거대회의 인기 - 이즈음부터 벨로시페드라는 거창한 이름대신 “자전거”라는 명칭을 일반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미쇼형 자전거의 영향으로 점차 앞바퀴가 커진 하이 휠(High wheel) 자전거가 표준화 되어가고 있었다.


        8월 영국의 제임스 무어는 울버햄턴에서 열린 잉글랜드 중부지방선수권대회에서 특대형 경주용 자전거를 등장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이른바 하이 휠 자전거의 서막을 알렸다.


1871년 영국    코번트리기계회사(Coventry Machinists)와 스탈리 앤 컴퍼니(Starley and Company)라는 두 자전거 회사가 설립된다. 이 두 회사는 침체되었던 영국의 자전거 산업에 하이 휠(High Wheel) 자전거로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이 두 회사에서는 차체 전체를 금속으로 만든 하이 휠 자전거 아리엘 (Ariel)기종을 출시한다.

* 아리엘(Ariel) : 천왕성 주위를 도는 위성 중 하나


1876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미국독립 100주년박람회에 상설 전시된 영국산 하이 힐 자전거는 많은 시선을 끄는데 성공한다.  (영국 코번트리기계회사에서 제조된 패러건(pargin)과 아리엘(Ariel)기종)  1870년대 중반 영국의 자전거산업은 번창하는데 남아메리카, 멕시코, 인도, 일본, 호주, 남아프리카에까지 수출되었다.

1878년 영국  켐프 스탈리(John Kemp Starley)가 캥거루 자전거를 개발 - 차체가 크고 방향조향장치가 달려있으며, 앞바퀴와 뒷바퀴의 크기가 같으며 프레임이 다이아몬드 모양이어서 운전자가 쉽게 중심을 잡을 수 있다. - SAFETY Bicycle의 시작


1888년 2월 영국의 존 보이드 던롭(John boyd Dunlop)은 미국의 찰스 굿이어가 1885년 발견한 라텍스와 유황혼합물에 의한 고무생성원리를 이용 벨로시페드의 안장을 개발했으며 “던롭”이라는 상표로 세상에 발표했다.


1889년  아일랜드 W. 흄(Hume) - 국제자전거 휴머틱 박람회에서 최초로 공기 타이어가 장착된 벨로시페드 모델을 선보였다. 던롭은 더블린에 공기타이어 공장을 설립했다.


1890년 던롭의 공기타이어 이용권을 따낸 주요 생산 공장에서 “자전거(Bicycle)” 란 명칭을 쓰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사용되던 다양한 명칭은 차츰 자전거로 통일되어간다.


1893년 영국으로 이주한 덴마크 사람인 미카엘 페데르센(Mikael Pedersen)이 앞선 자전거 모델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1893년형 삼각형 프레임 자전거를 개발한다.


1900년경       이탈리아 - 베르살리에르(bersagliere) 자전거 부대의 등장

        1909년 밀라노에 위치한 비앙카 자전거 공장은 이탈리아 군대로부터 접이식 자전거에 대한 납품을 의뢰받는다. 이후 1915년에는 듀얼 서스펜션(Dual suspension) 모델을 개발한다.


        * 프랑스 푸조 자전거 회사는 전시에 첩보용 자전거를 프랑스군에 납품했다.

        * 1095년 영국 BSA는 소방장비를 갖춘 자전거를 생산했다. 운전자의 기호에 맞게 프레임을 제작했으며 사이렌, 보방호수, 손도끼 등을 장착했다.

        * 독일 경보병대 예거(Jager)는 모든 대대에 자전거 사단을 둔 것으로 유명하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자전거 사단의 수는 80배로 늘어났다.


1903년 7월 1일 - 프랑스 세계최고의 자전거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의 개최

1905년 이탈리아 - 지로 디 롬바르디아(Giro 야 Lombardia) 자전거 대회 등 개최


1911년 자전거 기술자들은 자전거의 평균무게를 14킬로그램까지 낮추는데 성공했다. 이는 550그램의 타이어, 강철 튜브와 피니언 하나, 철제 바퀴 프레임까지의 무게였다. 많은 자전거 대회를 거치면서 자전거는 핸들이 낮아지고 손잡이와 발판은 더욱 스포티해졌다.


1913년 자전거 선수 루시엥 프티 브르통은 피아트(Fiat)에서 제작한 3단 기어장치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투어 드 프랑스에 출전했다. 이어 열린 이탈리아 자전거 대회에서는 1930년까지 프랑스에서는 1937년까지 기어달리니 자전거의 출전을 허가하지 않았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루면서 세계 자전거 산업은 일시 중대한 위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1940년대 이후 1970년대 까지는 유럽자전거의 황금기로 불린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자전거 제조 회사들은 이 시기 세계의 모든 자전거의 기준을 정립한 시기가 된다. 기어변속기와 브레이크 등 자전거 대회를 치루면서 수 없이 많은 기술이 개발되고 표준화 되었다.


1974년 미국의 텔레다인(Teledyne)은 처음으로 티타늄 프레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프레임은 주로 이탈리아의 람보르기니(Lamborgini)에서 생산했다.


1974년 1973년 미국 자전거협회가 설립되고 새로운 형식의 자전거 대회를 개최했는데 이를 MBX대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MBX(Bicycle Motocross)는 이미 1969년 7월 이후부터 스팅레이 자전거가 발전하면서 나타났고 1971년 스티브 매퀸 주연의 영화 <어느 일요일>과 1982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등에 등장하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1975년 MIT의 숀 버클리의 제자인 마크 로젠바움, 마크 탠쿼리, 스탠 스톤이 함께 개발한 알루미늄합금에 대한 연구결과를 게리 클라인이 1973년 자전거 프레임에 적용. 같은 해 엑손 크라프텍은 탄소섬유 튜브를 강철 조인트에 연결한 프레임을 설계했다. 구조적 내구성 문제가 있었기는 했지만 이 모델을 계기로 세계 각지에서 복합섬유(composite-fiber)제작의 길이 열리는 기회를 제공했다.


1976년 미국 보브 오스본(Bob Osbourne)이 발행한 잡지 <자전거 모터크로스 액션(Bicycle, Motocross Action)>은 곧 MBX 운동의 필독서로 자리 잡는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BMX의 인기로 말미암아 이와 관련한 새로운 형태의 자전거 대회가 속속 개최되면서 BMX 전문 선수들이 등장한다. 이후 BMX는 세계적으로 퍼나가면서 젊은이들에게 자전거에 다한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기존 BMX에 고도의 기술을 보강한 X-Game이란 타이틀로 대회가 진행된다.


OFF Road - 산악자전거


윤활유를 다시 공급해줘야 한다는 뜻의 “리팩(Repack)”은 캘리포니아 언덕의 수많은 소방도로 중 한곳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이후 리팩은 산악자전거, 클렁커(낡은 기계)의 대명사가 된다.


1976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린카운티 벨로클럽 타말파이스(Marin County Velo Club Tamalpais)에서 조직한 최초의 ‘리팩(Repack)" 공식대회 개최


1996년 산악자전거 - 애틀란타 올림픽의 공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하나의 스포츠로 인정

본 텍스트는 위 책을 기초로 비니루가 작업을 하고 있는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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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eeni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