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SCENT OF MONEY / 돈의 힘
BLOWING BUBBLES / 3부 거품과 붕괴
제작 : chimerica Media (영국 2008 - BBC방영)
00:00:10:00 (타임코드는 상이할 수 있습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세력은 사기업, 그중에도 다국적 기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남아메리카의 광대한 자연을 인간의 힘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그런데 이것을 가능케 한 기업이 있습니다. 150억 달러를 투자해서 볼리비아에서 브라질의 동쪽해안에 이르기까지 남미대륙을 가로지르는 송유관을 건설했고 아르헨티나 남부에 있는 파타고니아에서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이르기까지 장장 650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세계최장의 송유관을 건설했습니다.
니알 퍼거슨 /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현대 자본주의의 거대한 야만을 드러내는 이 같은 시도는 주식회사*의 등장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 주식회사 : 주식을 발행해 여러 사람들에게 자본을 조달받는 회사로 자본과 경영이 분리되는 회사의 대표적인 형태
16세기 화폐와 시용거래부문에서 혁신이 일어났고 17세기에는 채권시장이 탄생했습니다. 다음단계는 공동소유의 기반을 둔 유한책임회사*의 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에 더욱 힘을 실어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주식시장입니다.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녀석이죠. 주식은 미래수익에 대한 사람들의 예측을 기반으로 주식시장에서 그 가격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최근에 발생한 금융위기에서 보았듯이 주식시장은 쇼크마켓 즉 충격시장으로 돌변하기도 합니다.
* 유한책임회사 : 주주가 채권자에 대하여 출자한 지분만큼만 책임을 지는 회사형태
이렇듯 미래는 불안합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낙관적인 성향이 있죠. 뉴욕증시의 주가가 동반상승할 때 투자자들이 도취감에 빠지는 것처럼 말이죠. 연방 준비제도이사회의 전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이를 두고 비이성적인 과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과열된 주식시장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비눗방울과 같죠.
* 앨런 그린스펀 :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경제 관료로 1987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 연방 준비제도이사회의장을 역임함
중남미의 거대한 송유관 사업을 벌인 엔론사*를 두고 발생한 주식과열현상은 비이성적이었고 그 거품이 터졌을 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엔론사태(미국의 에너지 회사인 엔론사가 주도한 대형회계부정사건)는 미국역사상 가장 심각한 기업사기 였습니다.
* 엔론 : 1996년부터 2001년까지 6년 연속 “미국의 가장혁신적인 회사”로 선정된 에너지회사로 2001년 회계부정 사건으로 파산신청을 함
주식거래가 이루어진 지난 400여 년 동안 엔론사태가 첫 주식사기는 아니었습니다. 이런일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죠. 그리고 현대 금융위기의 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회계부정> <주가조작> 몇 세기동안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일이죠. 주식시장에 거품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인류가 역사의 교훈을 외면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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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SCENT OF MONEY / 돈의 힘
BLOWING BUBBLES / 3부 거품과 붕괴
이탈리아 베네치아
이곳 베네치아에는 금융역사를 통틀어 깜짝 놀랄 일화가 있습니다.
“프랑스왕실 국고의 훌륭한 관리자 에든버러 출신의 ‘존 로’ 그 업적과 삶을 기리며”
* 존 로 : 프랑스에서 활동한 영국의 재정가로 미시시피회사를 설립해 서인도회사로 발전시켰음
여기는 주식시장의 거품을 만든 주인공이 잠든 곳입니다. 존 로는 살인자에 상습적인 도박꾼이었지만 금융행위에서만큼은 천재였습니다. 자산 가치에 처음으로 거품을 일으켰으며 이 때문에 프랑스 시민혁명이 일어나게 되죠. 존 로는 한때 미국영토 4분의 1을 소유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상 최초의 주가폭락으로 그 모든 것을 잃었죠. 에든버러에서 암스테르담, 파리, 뉴올리언스를 거쳐 베네치아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의 벼락출세와 파멸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박물관에는 존로의 초상화가 소장되어 있습니다. 예, 여기 있군요. 깡마르고 갈망하는 표정 전형적인 스코틀랜드인의 모습니다. 미천한 신분에서 유명인으로 종국에는 파멸에 이른 <존 로>. 존 로는 1671년 영국 에든버러의 부유한 금세공장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694년에는 한 여인을 두고 결투를 벌이다 상대를 죽여서 사형선고까지 받았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존 로는 감옥을 탈출해서 네덜란드로 도피하게 됩니다. 도피처로 암스테르담을 선택한 것은 존 로에게 행운이었죠. 1690년대 암스테르담은 세계 금융혁명의 1번지였습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과의 전쟁 때문에 국영 복권을 만들어 판매했고 위조가 쉬운 주화로부터 상인들을 보호하고자 사실상 세계최초의 중앙은행을 설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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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 네덜란드에서 존로에 관심을 끈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주식회사였습니다. 주식회사는 전 세계에 걸쳐 활동하던 네덜란드 상인들 덕분에 생겨날 수 있었죠. 이들은 주로 아시아 지역과 거래를 했습니다. 동인도지역은 향신료 때문에 아주 매력적인 곳이었죠. 고추, 정향(丁香), 육두구(肉荳, Nutmeg), 생강 같은 그런 향신료가 유럽인들에게 인기가 있었죠. 음식 맛도 내주고 장기간 보관할 수 있었으니까요. 네덜란드 상인들은 뱃길로 향신료를 보다 신속하게 운반하고 싶었습니다. 돈 냄새를 맡은 것이죠.
최초로 동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네덜란드 상인들을 그린 그림입니다.
“향신료를 구하러 반탐으로 떠난 선박 4척이 물건을 가득 싣고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오다.”
“1598년 3월 1일 출항 - 1599년 7월 19일 귀향”
과연 얼마만큼의 이윤을 창출했을까요? 우려와 달리 단 한 번의 항해로 선박건조비용을 모두 회수했습니다.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 그곳을 향한 항해는 무척이나 길고 위험했습니다. 이 때문에 상인들은 공동으로 출자해 위험을 분산했습니다. 그 결과 동인도회사가 6곳이나 생겼지요.
1602년 네덜란드 정부는 동인도 회사들을 모두 합병했습니다. 네덜란드 연합 동인도 회사를 세우기 위해서였죠. 설립당시에 정부로부터 받은 면허장이 여기에 있습니다. 면허장에는 “희망봉에서부터 마젤란해협에 이르는 구간까지 무역에 있어서 전매권을 인정한다.”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세계의 절반에 가깝죠.
네덜란드 연합 동인도회사의 구조는 독특했습니다. 자본금은 네덜란드 주요도시에 분산되어 있었는데 정작회사는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라고 권유함으로써 자금을 확보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투자의 형태입니다.
이 그림은 동인도회사의 창업자 중 한명인 “디르크 바스” 가문의 초상화입니다. 바스를 포함해서 소위 동인도회사의 참여자로 불리는 17명은 6,000길드를 내고 회사의 이사진이 됐습니다. 1606년에는 동인도회사에 투자한 사람들에게 주식 즉 미래에 발생하게 될 권리를 일정부분 부여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다국적 기업에서 발행한 세계 최초의 주식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의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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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후 바스와 이사진은 주식을 환불하는 것은 불가하지만 투자자들에게 되파는 것은 인정한다고 주주들에게 선언했습니다. 동인도 회사의 주식거래를 시작으로 세계 최초의 주식시장이 문을 열게 되었지요.
주식의 등장은 금융시장의 판도를 바꿨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주식 가격이 결정되는 세계를 창조한 것이죠. “존로”는 주주들이 동인도회사의 주식매매를 통해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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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년 세계최초의 주식회사는 세계를 정복할 태세를 갖췄습니다. 면허장을 갱신하고 새 주주들도 모집했습니다. 물론 주식거래도 활발했죠. 냉혹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때론 전쟁도 불사했습니다. 동남아 전역에 공장과 상점을 세우고 나니 이번에는 경쟁자인 스페인과 영국의 진출을 견제해야 했습니다. 당시 동인도 회사는 전함 40여척과 10,000명의 사병들을 거느렸는데 이들의 힘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이들에게 군사력은 무역을 하기위한 필수조건이었죠. 그렇다고 동인도회사의 성공비결이 바타비아 함선에 탑재된 대포에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성공은 여느 대기업처럼 비용절감을 위한 비용의 경제, 또한 경제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네트워크의 외부성(한 사람의 행위가 제3자의 경제적 후생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 즉 취합된 정보의 활용 능력에 있었습니다.
바타비아 함선은 반은 전함, 반은 다국적 기업이었던 것이죠.
간단히 말하면 규모가 크면 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1620년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는 향신료 무역을 독점했습니다. 그 결과 주주들은 돈 방석에 앉았죠.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초창기 주주명부입니다. 모두 엄청난 돈을 벌었죠. 창업당시 1,000길드를 투자했다면 1736년에 그 가치는 무려 7천 길드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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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도 회사는 매년 이익의 16.5%를 주주들에게 배당했습니다. 디르크 바스 가문의 투자금 6,000 길드는 50만 길드의 자산으로 늘어났죠.
암스테르담에 숨어 지내던 존 로에게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는 하늘의 계시에 가까웠습니다. 당시 존 로는 도박판을 전전하고 있었는데 동인도회사와 이회사의 주식거래를 중개했던 증권거래소 그리고 암스테르담은행 이 3자의 역학관계에 매혹됐습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천재 금융가 존 로는 이들 관계에서 결함을 발견합니다. 우선 주식을 제한 한 것부터가 못 마땅했습니다. 게다가 암스테르담은행의 보수적인 운영도 이해가 되지 않았죠. 상인들 간의 자금이체를 통해 결재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막상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은행권은 발행하지 않았으니까요.
이에 존 로는 암스테르담의 주식제도 개선방향을 놓고 고민하기에 이릅니다. 독점무역회사와 발권은행이 생겨난다면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일들이 가능하겠죠. 존 로는 네덜란드에 새로운 금융제도를 선사할 계획을 세웁니다. 1876년 존 로는 자신의 주식 이론을 실험할 무대로 프랑스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왜 프랑스는 그를 받아들인 걸까요?
이유는 당시 프랑스의 재무상태가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루이 14세의 잦은 전쟁 탓에 나라는 빚더미에 올랐습니다. 1715년 루이 14세가 세상을 떠나자 루이 15세를 대신해서 오를레양공이 섭정하는 동안 무려 3번이나 국가부도가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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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에게는 더 없이 좋은 기회였죠.
존 로의 생각은 네덜란드 식 은행을 세워 프랑스 경제를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같은 100리브르 지폐를 발행하는 것이었죠. 은행에 투자금이 들어오면 그 돈을 정부의 막대한 부채와 통합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지폐를 발행해서 프랑스의 교역을 확대하고 경제력도 키울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프랑스 왕실에서 보면 일거양득이었죠. 통합운영으로 정부의 빚을 은행주식으로 전환했고 군주는 원하는 만큼 돈을 발행 할 수 있었습니다.
존 로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절대 군주는 권력이 제한된 군주보다 더 많은 융자를 보다 낮은 이율로 받을 수 있다. 신용에 대해서도 단 한사람에게 집중되어야 한다.”
절대 권력은 오를레양공의 손안에 있었죠. 존 로는 오를레양공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렸습니다. 금융공학을 통해 프랑스의 패권을 부활시키는 것만큼 훌륭한 목표가 또 있을까요? 하지만 존 로에게는 또 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존 로가 말하길 “은행의 설립은 내 계획 중 유일한 것도 가장 위대한 것도 아니다. 난 인도의 발견보다도 더욱 강력한 것으로 전 유럽을 놀라게 하리라!”
존 로의 두 번째 계획은 바로 독점 무역회사를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전 국민이 이 회사의 주주가 되고 존 로 자신은 대표이사가 된다는 계획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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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대한 계획의 중심에는 신대륙이 있었습니다. 미국 미시시피 강가에 펼쳐진 루이지에나의 거대한 땅이 바로 그것이었죠. 마침내 존 로는 새 식민지와의 독점 무역권을 따 냈습니다. 이후 프랑스 국민들은 주식 구매를 권유받았고 이사진 명단 맨 앞에는 그의 이름이 올랐죠.
이것은 통화팽창정책*에 가까웠습니다. 그로인해서 1716년 경기불황으로 몸살을 앓던 프랑스의 경기가 회복됐죠. 프랑스 왕실에서는 공공부문의 부채를 독점 무역권과 세금징수권이 있는 미시시피회사의 주식으로 전화시킬 수 있어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 통화팽창정책 : 통화수축에 따른 불황상태에서 경제성장을 위하여 통화를 조금씩 늘려 구매력을 높이고 물가를 올리는 정책
대중들은 주식 투기의 광기에 사로잡히게 됐고 미시시피의 주가는 고공행진을 계속했습니다. 1816년 9월 4일 주가는 액면가의 10배인 5,000 리브르를 넘어섰고 1719년 12월에는 10,000리브르에 이르렀습니다.
존 로의 주식발행사무소가 있는 거리입니다. 이 좁은 골목에서 투기에 사로잡힌 파리 시민들이 주식을 사려고 혈안이 된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주가가 오를수록 구매 욕구는 커져갔습니다. 전형적인 주가 과열사태였죠. 이때부터 프랑스에 백만장자란 말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1720년 1월에는 이들 백만장자 중에 존 로가 가장 부유했습니다.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에 반해 스코틀랜드 출신의 도망자 존 로는 “내가 곧 경제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위치에 까지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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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돔 광장입니다. 이곳에서 존 로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금융 권력을 손에 넣게 됩니다. 프랑스 재무장관의 자리에까지 올라서 많은 권한들을 행사했죠. 간접세의 징수, 국가 부채의 관리, 26개가 넘는 조폐창의 감독, 미시시피 회사의 운영, 이 회사는 아프리카 및 아시아 지역과의 독점 무역권을 누렸었죠. 또한 오늘날 미국영토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루이지에나 식민지 독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개인 재산도 엄청났습니다. 마자렌궁, 방돔광장에 있는 건물들, 교회저택 12채, 프랑스령 루이지에나의 수많은 농장들, 거기다 1억 리브르 상당의 미시시피회사 주식까지. 12년 전 처음으로 프랑스에 왔을 때 전문 도박꾼에 첩자로 의심받았던 남자치고는 대단한 성공이었죠. 1720년 1월 존 로의 승리는 완벽해 보였습니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살인범이 프랑스의 재무장관으로 다시 태어났으니까요.
하지만 존 로는 멈춰야 할 때를 몰랐습니다. 오히려 미시시피 회사의 주가를 올리려고 화폐를 더 찍어낼 궁리를 했죠. 당시 존 로가 소유했던 마자렌궁에는 그의 은행과 회사가 나란히 있었습니다. 자신의 회사 주가를 끌어올리려면 일단 복도를 지나서 주식발행 사무소에 들렀다가 다시 은행권 발행 사무소에 들르면 그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내부거래였던 것이었죠.
그이 행위는 오늘날 우리가 <폰지사기>라고 부르는 것에 해당합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사기꾼 찰스 폰지(Charles Ponzi)의 이름을 딴 것이죠. 다단계 투자 사기처럼 뒤에 들어오는 투자자의 원금으로 앞 사람의 이익을 챙겨주다 끝나는 식입니다. 존 로는 타사를 인수하고 배당금을 제공하기위한 재원을 주식 판매비용으로 마련했던 것입니다.
^^ 폰지게임
미국에 개발 붐이 한창이던 1925년, 찰스 폰지라는 사람이 플로리다에서 막대한 투자배당을 약속하며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아무런 사업도 벌이지 않았다. 투자금 일부는 자신이 착복하고 투자자들 에게 돌아갈 배당금은 투자자의 납입금으로 지불했다. 이렇게 허황된 꿈 을 파는 사업을 폰지 게임이라 부른다. 이는 사기범이라는 주연과 시민 의식이 부족한 대중이 조연이 돼 주로 성립된다. 따라서 각 개인은 주어지는 정보와 추론에 무조건 의존하지 않고, 여러 대안들을 비교함으로써 가장 적절한 방법을 구해야 한다. 개인의 결정을 보편적 가치에 비추어 보는 비판적이고 개방적인 합리적 사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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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느 폰지 사기처럼 언젠가는 터질 거품이었습니다. 지폐도입과 프랑스의 경기부양에는 성공했지만 그가 만들어낸 거품은 언제 터질지 몰랐습니다.
1720년대 초 프랑스는 미시시피 거품 즉 투자광풍에 휩싸였습니다. 무명의 도박꾼에서 프랑스 경제의 주인이 된 <존 로> 하지만 아무리 숲이 울창해도 하늘을 전부 가릴 수는 없었습니다.
존 로는 프랑스령 루이지에나에서 큰 수익을 낼 것을 장담했습니다. 에덴동산과 같은 루이지에나에서 우호적인 원주민들로부터 값비싼 재화를 싸게 구입할 것으로 상상했죠. 원주민들로부터 재화를 얻으면 미시시피 강변의 뉴올리언주를 통해 프랑스에 들여올 예정이었습니다. 식민지에 정착할 이주민들만 있으면 완벽했죠.
존 로는 프랑스인들이 식민지 개척보다는 주식투자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개척민들을 모집했습니다. 마침내 수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약속의 땅 루이지에나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로는 처참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약속의 땅 루이지에나는 벌레가 들끓는 늪지였던 것입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이민자의 80%가 황열병과 같은 전염병과 기아로 숨지게 됩니다. 루이지에나와의 독점 무역권은 쓸모가 없게 되었죠.
당시 네덜란드의 만평의 내용입니다.
“이 곳이 바로 그 유명한 미시시피 땅입니다.
존 로의 속임수에 속아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날렸죠.
아무리 주식이 인기가 있다고 해도 그저 바람과 연기에 불과 할 뿐입니다.“
존 로의 성공 뒤에는 대중들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미시시피 사건은 그 믿음을 배반한 사건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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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의 사업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미시시피 회사의 주가는 하락했습니다. 주식폭락을 막으려고 존 로는 오를레양공에게 주식의 공식 발행가격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바로 이때 절대 권력의 한계가 들어나게 된 것이죠. 곧이어 주가는 곤두박질 쳤습니다. 성난 군중은 은행 앞으로 몰려들었고 시민들이 던진 돌에 창문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12월이 되자 미시시피 회사의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습니다.
1730년에 발행된 이 지도에는 세계최초의 주식시장이 거품 때문에 어떻게 무너졌는지 묘사되어 있습니다.
행운의 여신이 선물을 던지고 있고 아기천사들에게 주식을 건네받은 투자자들이 미소를 짓고 있죠. 그런데 여기 부서지니 인쇄기 옆에서 주식을 찢고 있는 천사들이 보이죠. 그리고 거품을 만드는 천사들도 보이네요. 오른쪽에는 표정이 심각한 남자들이 있는데 이 중 한 명이 자살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결국 미시시피 거품은 과열되다 못해 폭발했죠. 존 로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쫒겨 황급하게 나라를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생전에 부인과 딸을 보지 못했죠. 베네치아로 돌아온 그는 도박을 하면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결국 1729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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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가 일으킨 거품의 파열은 프랑스 금융발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프랑스인들은 화폐와 주식을 멀리했고 프랑스 왕가의 재정문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죠. 루이 15세와 16세의 국정운영은 갈수록 도탄에 빠졌습니다. 결국 프랑스 왕가의 재정파탄이 혁명을 불러오게 됩니다.
1719년에 터진 미시시피 거품이 주식역사상 가장 큰 사건은 아닙니다. 단지 주식시장의 거품을 논 할 때 빼 놓을 수 없을 뿐이죠. 금융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은 1929년 10월 24일에 터진 뉴욕 월가의 주가 대폭락사태입니다. 이날을 검은 목요일이라 부를 정도면 그 정도를 아시겠죠. 이 날을 기점으로 미국 주가는 3년 동안 추락을 거듭하다 1930년 2월 바닥을 칠 때는 무려 86%나 빠졌습니다.
뉴욕월가의 주가 대폭락은 인류역사상 가장 심각한 불황을 몰고 왔습니다. 미국의 총 생산량은 급격하게 감소했으며 실업률은 25%에 육박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주가 폭락이 일어나 것일까요? 학계에서도 의견은 분분합니다. 기술적인 분석이야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사건의 핵심은 집단심리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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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무리 똑똑한 투자자라고 해도 주가가 오르는 강세장에서는 비이성적인 과열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동물들도 마찬가집니다. 무리들이 방향을 틀 때에는 무섭게 돌변합니다. 조그마한 낌새에도 벼랑을 향해 돌진하게 마련이죠.
“한 마리가 공포를 느끼게 되면 소떼는 공포의 냄새를 맡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공포의 대상이 뭔지도 모른 채 두려움에 휩싸여 달리는 것이죠. 결국 공포가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입니다. 늘 그런 식이죠.”
주식시장 용어로 매수세가 매도세로 전환되고 황소가 곰이 되는 순간입니다.
소떼에 비유를 했는데요 요점은 인간심리가 시장에 반영된다는 것입니다. 시장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그 기복이 아주 심합니다. 순식간에 탐욕이 공포로 바뀌고 우울증을 넘어 신경쇠약증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통계적으로 분포로 예측할 수 있다면 폭락이나 폭등도 없겠죠. 하지만 연중 대부분을 평균적인 분포에 머물다가 예측할 수 없는 수치에 이를 때도 있습니다. 인간의 키를 에로 들어봅시다. 키가 120cm이하이거나 240cm이상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수학시간에 배운 정규분포도입니다. 빈도에 따라 자주 발생하는 것은 가운데에 아래쪽에는 그보다 낮거나 높은 것들입니다. 곡선이 꽤 가파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균키에 가까우니까요. 하지만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좀 더 완만한 곡선에 가깝습니다. 그 이유는 빈도가 낮거나 높은 움직임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통계학자가 말하는 <긴 꼬리> 혹은 <두툼한 꼬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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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의 움직임이 사람의 키와 같은 분포를 보인다면 주가가 10퍼센트 이상 하락하는 일은 500년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한 정도겠죠. 마찬가지로 주가가 20퍼센트 이상 폭락하는 일은 동화 속 이야기일 것입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이와 같은 일들은 7번이나 발생했습니다.
1987년 10월 사람들은 대공황이 재현될 것이라며 겁에 질렸는데 우려와 달리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 달 동안 죽어있던 장이 다시 급등세로 돌아섰죠. 하지만 이시기 발생한 거품은 범죄의 온상이 됐습니다.
미시시피회사가 터트린 거품 속에서 18세기를 맞이했다면 20세기를 마무리하는 거품은 다른 곳에서 터졌습니다. 투자자들을 탐욕의 꿈 너머로 몰아갔던 한 회사. 이 회사는 전 세계 금융시장을 바꿔놓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막강한 정치인맥을 활용해서 강세장의 맨 위에 올라섰습니다.
Fortune지가 6년 연속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회사로 선정한 바로 엔론사입니다. 엔론사가 파산한지도 7년이 지났습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츰 잊혀져가고 있죠. 하지만 엔론사의 분식회계는 오늘날까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2000년 8월 미국 휴스톤에 있는 엔론사의 주식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엔론사는 네브라스카주의 작은 천연가스회사로 출발했고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대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월가로부터 사랑받을 수밖에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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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투자자들이 역사의 교훈을 새겨들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엔론사의 이야기는 주인공만 바뀌었지 280년 전에 있었던 미시시피 거품과 유사합니다. 존 로가 프랑스의 재정개혁을 목표로 삼았다면 엔론사의 회장 켄 레이(엔론사의 회장으로 대규모 회계부정을 주도함)는 국제 에너지 시장을 개혁하고자 했습니다.
거대 전력회사들은 수 년 동안 에너지산업을 주도해왔습니다. 에너지를 직접생산해서 소비자들에게 팔았죠. 켄 레이는 에너지 은행을 만들어 생산자와 소비자를 중계해 에너지를 팔고자 했습니다. 엔론사를 세계최고의 에너지회사로 만들고 싶어 했죠. 엔론사의 전직 임원인 셰런 왓킨스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셰런왓킨스(엔론사 전 임원)
“정말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아이디어만 괜찮다면 엔론사의 자금지원으로 사업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존 로처럼 켄 레이도 권력 가까이 있었습니다. 조지 허버트 부시대통령의 선거 자금을 지원해서 많은 이득을 봤죠. 부시 대통령은 에너지산업과 관련한 규제를 풀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부는 에너지 사업의 민영화를 타고 엔론사는 자산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중남미지역에서는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송유관 사업을 벌였죠,
켄 레이는 절친한 친구 조지부시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서 이곳 아르헨티나에서 세계 최대의 천연가스관을 건설했습니다. 엔론사는 에너지뿐만 아니라 흙, 물, 공기와 같은 자원을 비롯해 심지어 인터넷 대역폭까지 거래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 옛날 미시시피회사와 흡사한 사건이 뉴욕 월가에서 벌어지고 있었죠. 비이성적인 과열에 대해서 경고했던 앨런 그린스펀*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앨런 그린스펀 :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경제 관료로 1987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 연방 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을 역임함
주식시장에서 자금이 유동적으로 공급될 때 거품이 생성됩니다. 1990년 6월부터 1995년 2월까지 기준금리를 한 차례 올린결과 엄청난 유동성이 확보됐죠. 투자자들을 비롯해서 스톡옵션을 받은 회사의 임원들은 엄청난 부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1997년부터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엔론사의 주가는 다섯 배로 뛰었고 20달러는 순식간에 90달러가 됐죠. 그야말로 미시시피사태의 재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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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원유매장이 있던 휴스턴의 경제는 낙관적이었는데 이 곳 조차도 처음 경험하는 풍요였습니다. 이곳 리버오크스는 휴스턴에서도 가장 부유한 동네입니다. 켄 레이와 엔론 임원들 대부분이 이곳에서 살았죠. 엔론이 파산하던 해에 최고위층 150명에게 평균 530만 달러가 돌아갔습니다. 고급자동차가 잘 팔릴 수밖에 없었죠.
셰런왓킨스(엔론사 전 임원)
“당시 엔론사의 임원들은 연봉에 훨씬 넘는 금액을 보너스로 받았습니다. 연봉의 75퍼센트 정도를 받으면 무안해 할 정도였죠. 적어도 연봉에 네 다섯 배는 받아야 체면이 섰으니까요. 꽤 큰 금액이었죠.”
켄 레이는 회사를 경영할 때 다음과 같은 윤리기준을 내세웠습니다.
켄 레이
- 엔론사는 어떤기업과도 정직하게 거래를 한다.
- 법과 규칙을 준수하고 무엇보다 신용을 우선한다.
-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하지만 엔론사 역시 정교한 사기극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전화통화내용 1)
엘파소전기회사 : 엘사소입니다.
엔론사직원 : 엔론사의 데이비드입니다. 전력수요가 적어서 상황이 좋지가 않네요.
엔론사 직원과 엘파소전기회사 직원이 나눈 대화를 녹음한 것입니다. 전력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발전소 가동을 중단하는 것을 논하고 있죠.
(전화통화내용 2)
엔론사직원 : 화력발전기를 껐다가 가동하는데 얼마나 걸리죠? 서 너 시간이면 충분하죠?
엘파소전기회사 : 네 그럼요.
엔론사직원 : 괜찮다면 한 대 정도는 꺼두죠.
엘파소전기회사 : 그러죠.
결과적으로 엔론의 주가는 상승했지만 소비자들은 정전 때문에 불편을 격어야 했죠.
엔론사는 이런 방식으로 벌어들인 돈을 온갖 방법으로 횡령했습니다. 장부를 조작해서 자산을 증액하기도 했죠. 그리고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해 대차대조표상의 부채를 숨겼습니다. 이 중에는 “츄크”나 “랩터”같은 독특한 법인명도 있습니다.
엔론사는 손실을 이익으로 둔갑시키고자 다양한 속임수를 썼습니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했죠.
셰런왓킨스(엔론사 전 임원)
“장부를 조작하다보면 결국엔 망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야망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자 켄 레이와 임원들은 수억 달러의 주식을 시장에 내다팔기 시작합니다. 물론 대중들에게는 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고 헛소문을 퍼뜨렸죠.
존 로가 미시시피회사의 주가폭락을 막지 못했던 것처럼 켄 레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01년 11월 15일 미국 연방 준비제도이사회의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공공서비스분야에서 엔론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수상은 당연했습니다. 1990년대 말 앨런 그린스펀의 금융정책결과로 엔론거품 및 IT거품이 터졌으니까요. 그 수상식이 끝나고 2주 만에 엔론사는 파산신청을 했습니다. 과연 빚이 어느 정도였을까요?
셰런왓킨스(엔론사 전 임원)
“2001년 엔론사는 파산신청을 하려고 채권단과 만난 자리에서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대차대조표상에는 장기차입금에 130억 달러라고 나와 있었지만 사실은 380억 달러라고 밝혔죠. 무려 250억 달러의 부채가 장부 뒤에 숨어있었던 것입니다.”
니알 퍼거슨
“부채금액에 다들 놀랐겠군요. 설마 그 정도 일 줄은 상상도 못했겠죠.?”
셰런왓킨스(엔론사 전 임원)
“그럼요! 다들 놀라서 쓰러질 지경이었어요.”
엔론사의 직원 4,500명이 해고되기 바로전날 임원들에게는 최후의 만찬으로 보너스가 지급됐습니다.
2006년 5월 켄 레이는 유가증권법 및 통신법 사기죄로 기소되어 유죄선고를 받았습니다. 그의 신복 제플리스킬링은 24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죠. 켄 레이는 형이 확정되기 전 콜로라도주에 있는 아스펜에서 휴가를 보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사라졌지만 그가 저지른 부정한 수법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엔론사가 벌린 분식회계*는 서양금융권에 관심을 끌었죠.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같은 부정행위 때문에 오늘날의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입니다.
* 분식회계 : 기업이 고의로 자산이나 이익을 부풀려 부채를 적게 계산함으로써 재무상태나 경영성 재무상태의 변동을 조작하는 회계방식
셰런왓킨스(엔론사 전 임원)
“엔론사의 금융회계방식이 마치 전염병처럼 금융권에 퍼진 것입니다. 엔론사의 거래원들과 은행직원들 그리고 에너지거래소 직원들 까지도 말이죠. 금융시장 전반이 부패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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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책임주식회사는 놀라운 조직입니다. 하지만 이회사가 등장하고부터 기업들의 부정행위는 늘었고 주식시장도 비이성적일 때가 많았습니다. 사실 기업과 주식시장은 쌍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쪽이 이유 없이 날뛰면 다른 쪽도 함께 휩쓸려 날뛰니까요
지난해 발생한 금융위기에서 경험했듯이 금융시장은 우리 뜻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신용경색이 시작되고 주가가 반 토막이 난 경우를 세계 각지의 주식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었죠. 미래에 대한 기대치가 과도한 낙관에서 과도한 비관으로 바뀌고 사람들의 탐욕이 공포로 돌아서는 순간 주가는 또 다시 불규칙한 곡선을 그릴 것입니다. 마치 안데스 산맥처럼 말이죠.
투자자로서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정상에 내려올 때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평탄한 언덕을 따라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태로운 금융시장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돈의 힘 4부에서는 수익만큼 중요한 위험요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때까지 이 질문을 되새겨보십시오.
보험에 가입하셨나요? 아니면 헷지 상품에 투자하셨나요?
THE ASCENT OF MONEY / 돈의 힘
BLOWING BUBBLES / 3부 거품과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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