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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내용은 비니루가 다큐멘터리 기획을 위해 작성한 내용 중 일부 입니다.
① 국호(國號)
국호란 한 나라의 지칭을 공식화 하는 명칭으로써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에 의해 빈번하게 불리는 매우 중요한 나라 이름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 세계 모든 나라는 자국의 이름을 국제 공용어인 영문으로 기록하고 필요에 따라 UN이 정한 국제 공용어로 자국의 명칭을 지정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사용하지만 영문으로의 표기는 Republic of KOREA라고 하는 명칭을 사용한다. 국호가 자국어와 영문표기가 상이하게 나타난다. 이 같은 경우는 일본과 중국역시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서양인들에 의해 부린 명칭이 고착화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우리의 경우는 대략 13세기 고려시대이후 몽골과 중국을 통해 알려지면서 高麗의 중국식 발음을 서양인이 표음하면서 고착되었기 때문에 Caule, Gores 등으로 알려져 오늘날 “코리아”가 영문 국호가 되었다.
② 고려(高麗) Caule, Cauri, Gores....
12~13세기 동아시아 정세를 보면 1192년 일본은 가마쿠라막부가 수립되고 1206년 몽골의 테무진은 칭기즈칸이 되었으며 중국은 1271년 원나라를 성립했다. 이후 명나라와 청나라로 이어졌고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로부터 조선으로 이어지는 시기였다.
이즈음 몽골과 중국을 드나들던 유럽의 수도사와 상인들은 유라시아 동쪽 끝에 위치한 高麗에 대한 이야기를 몽골과 중국인 관리들로부터 전해 듣게 되면서 비로써 서양인들이 고려를 접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高麗의 우리식 발음이 아닌 중국식 발음 “카오리”를 듣고 그들의 언어로 기록하면서 Caule, Cauli, Gores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었다.
③ 엑소님 & 엔도님 (Exonym and endonym)
* 엑소님 : 자국의 뜻대로 한 지역의 명칭과 민족을 부르는 태도를 의미한다. 물론 자국의 지명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부르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 엔도님 : 한지역의 지명을 영문국호로 공식화된 방식으로 부르거나 해당 나라의 발음으로 표기 및 지칭하는 방식을 말한다.
※ 화자의 입장에 따라 상대적으로 바뀌는 현상에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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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대한민국 입장 |
일본 입장 |
중국 입장 |
몽골에 대한 한국입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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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님 |
대한민국 |
Kankoku (韓國) |
漢城 (서울) |
몽고(蒙古) |
|
엔도님 |
KOREA |
daikanminkoku (大韓民國) |
首爾 (서울) |
몽골(Mongol, Mongolia) |
④ 대한제국(大韓帝國) / 대한민국(大韓民國)
우리나라의 공식 국호는 한글로는 “대한민국” 한문표기는 大韓民國 그리고 영문표기는 Republic of KOREA다. 이는 1948년 8월 15일 건국과 함께 공식화되었는데 1919년 4월 10일 결정된 상해임시정부 첫 의정원(오늘날의 국회)의 중요한 안건으로 결정된 국호를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통한 국호의 변천을 보면 크게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조선>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조선총독부)/상해임시정부(대한민국)> <대한민국>이 된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이 국호로 선정된 과정은 일제의 국권찬탈이 극에 달하던 1919년 4월 10일 오후 10시 중국 상해 프랑스 조계(租界)의 김신부로(金神父路)의 허름한 건물에 3.1운동으로 탄생한 상해임시정부 첫 의정원 회의에서다.
밤을 세워가며 진행된 이날 첫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안건은 나라의 이름, 국호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처음 ‘대한민국’이란 명칭을 제안한 사람은 신석우(申錫雨, 1894~1953)였다. 그러나 논란이 만만치 않았다.
“대한(大韓)이란 말은 조선왕조 말엽에 잠깐 사용하다가 망한 이름이니 부활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자 신석우는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합시다.”라고 말했다. 결국 의견은 표결에 부쳐지고 다수결에 의해 “대한민국(大韓民國)으로 국호가 최종 결정되었다.
◇ 대한(大韓), 1897년 광무건원과 함께 사용되었으며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했다.
이 과정에서 위정척사사상에 기반을 둔 의병계열은 “제국”을 <복벽주의(復僻主義)>세우고자 했으며 개화사상에 기반을 둔 세력은 “민국”을 <공화주의(共和主義)> 지지했으며 논쟁 끝에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결정되었다.
대한제국(大韓帝國)은 군주가 주권을 가진 나라고, 대한민국(大韓民國)은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나라다. 그리고 임시정부 수립과 더불어 제정 공포한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우리 역사가 군주주권에서 국민주권으로, 군주전제에서 민주공화제로 바뀌는 민족사의 대전환을 이뤘다.
우리나라의 로마자 국호는 KOREA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선포 될 당시, 정부는 국제사회에 로마자 국호를 "Republic of Korea"로 천명했다. 그리고 같은 해 북위 38도선 북쪽에서 창건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로마자 국호를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로 표기했다.
그런데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대회 때 《Corea》라고 쓰인 응원 띠가 등장하고 "오 필승 꼬레아"라는 응원가가 울려 퍼지면서 우리나라의 로마자 국호를 Corea로 해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이 제기되었다.
우리나라의 국호 KOREA는 일부에 알려진 것과 같이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C]가 [K]로 변경된 것일까? 올림픽 등 국제행사 때 알파벳 순서에 따라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먼저 입장하는 것을 불쾌하게 여긴 일본이 우리국호를 지금의 그것으로 바꾸었다는 일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 실체는 무엇일까?
그러나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나라의 공식명칭은 《Chosen》이었고 우리의 땅은 '대일본제국' 영토의 일부였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우리는 올림픽은 물론이고 그 어떠한 국제경기에도 우리나라의 이름으로 출전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일부에서 주장하는 [C]가 [K]로 바뀌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 <러시아 제국 총도> 러시아의 지리학자 키릴로프(johann kyrillow)가 1734년 작성한 세계지도 우리나라에 Korea라고 표기된 최초의 지도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KOREA]라는 국호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 우리나라 국호 KOREA 변천 이야기
문헌을 통해 우리나라 국호가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850년 경 신라를 방문한 대식국(아랍)상인들이 기록한 “sila”였다. 그러나 이후 13세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을 지칭한 서양기록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몽고족이 아시아로부터 유럽, 이슬람 세계를 잇는 대제국을 건설한 이후 서구의 선교사들이 몽고제국을 방문하면서 고려의 존재가 서방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3세기 로마 교황의 서한을 전달하러 몽골제국을 방문했던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카르피니가 “Solanges”의 왕자에 대해 <몽골인의 역사>에 기록하면서 점차 고려에 대한 서양인들의 관심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Solanges라는 몽골어로 “고려” 또는 “고려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몽골은 당시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으므로 동서교류에 있어서 커다란 역할을 했다. 또한 고려가 몽골의 부마국이 되고 많은 사신들이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고려의 이름이 널리 전파된 게기가 되었다. 이렇듯 몽골제국을 통해 우리나라의 로마자 표기가 등장한 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고려의 중국식 발음인 Cauli가 등장한다.
몽골제국이 붕괴되고 16세기 대항해 시대가 도래 하면서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시아에 진출하는데 이때부터 우리나라를 로마자 표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Coree" "Core" "Coray" "Corea" "Chausien" "Cauly" 등 저마다 발음대로 표기함으로써 다양한 로마자 표기가 난무하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표기가 존재 했던 것은 아직 고려의 존재가 서양 사람들의 인식 속에 각인 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때 고지도에는 한반도를 하나의 섬으로 그려진 것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시기 우리나라는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몽골의 부마국이었던 고려(高麗)의 이미지를 더 많이 떠 올리곤 했던 것이다.
또한 당시 일본은 서양의 선교사들이 드나들던 주요 지점이었던 까닭에 이 시기부터는 高麗에 대한 일본인들의 발음에 따라 "Cordi" "Corei" 등과 같은 표기가 나타나게 된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朝鮮)의 표기가 병기되는 양상을 보였으나 대세를 이루지는 못했다.
1590년 경 출판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스탈디-작자불명의 세계지도에서 최초로 “꼬레아(Corea)라고 표기된 기록이 발견된다. 그러다가 17~18세기부터 ‘Corea'가 주된 표기로 떠오르는데 Corea는 국호 Core에 a가 붙어 생긴 말이다.
▶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서방세계에 알려졌을까?
고조선 이후 반만년의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는 과연 언제부터 중국이외의 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했을까? 현재까지의 각종 문헌을 바탕으로 하는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서방세계에 일려진 때는 고려 고종대인 1247년으로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로 몽골에 파견된 카르피니(Giovanni da Plano Carpini)가 쓴 《몽골인의 역사》 (Historian Mongolorum)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카르피니는 몽골어로 “무지개”를 뜻하는 "Solanges"로 고려(高麗)를 기록했는데 왜 고려를 무지개로 표현했는지는 당시 몽골에서 고려(高麗)를 지칭했던 내용에 대해 연구가 필요하다.
이후 유럽의 수도사와 여행가들을 통해 간헐적으로 고려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그러나 대부분 몽골인과 중국인이 발음하는 高麗를 표음으로 기록하는 방식이어서 그 형태가 Solanges, Caule, Cauli, Kaoli 등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
▶ 외국에서는 우리나라를 어떻게 부르고 기록했나?
우리나라는 각 시기별로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조선>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조선총독부)/상해임시정부(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순서로 국호(國號)가 정해졌다.
모두 한문을 기초로 하는 국호로써 한자문화권에서는 동일한 국호를 사용했으며 일제강점기 이후 근대에 들어서면서 한글과 영문 국호를 함께 사용하게 되었다.
문제는 한자이후 영문 국호를 사용하면서부터 생겨나게 시작했다. 즉 대한민국을 “Daehanmingook” 이라 말하지 않고 KOREA라는 국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서양인들은 우리나라를 직접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중국과 몽골,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전해 듣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高麗, 朝鮮 등의 국호에 대한 발음은 몽골인, 중국인, 일본인들이 말하는 대로 듣고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13세기 고려(高麗)부터 우리나라의 존재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했던 이유로 조선시대에도 여전히 고려라는 명칭이 통용되었고 일제강점기역시 그랬다.
▶ 왜? 우리나라 국호는 한글과 영문이 다를까?
우리는 지금 영어가 국제 공용어인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영어는 약 250년 이전부터 국제무대에서 대략적으로 통용되는 공통의 언어였다. 따라서 점차 국제간 관계가 깊어지면서 국호에 대한 알파벳 표기가 필요했는데 이즈음부터 공통적인 국호가 사용되었다.
그래서 자국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자국의 나라이름 즉 국호(國號)를 지정하는데 중국은 China, 일본은 Japan 그리고 우리나라역시 Korea라는 영문 국호를 결정한다.
그러나 한자문화권인 세 나라의 국호는 모두 한문 국호와는 전혀 다른 발음의 영문국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는 각각 외부에 알려진 연유에 따라서 결정된 것으로써 중국은 진(秦)나라의 시절, 유럽에 소개된 것에 연유하고, 일본의 Japan이란 표현은 중국의 당나라시기 일본(日本)을 “지펀”(Jippon)이라고 발음한 것을 마르코 폴로가 그의 저서 <동방견문록>에 “Jipangu(Xipangu)”라고 기록하면서 연유했다고 전해진다.(확인필요)
결국 한자문화권 세 나라의 영문국호가 자국의 국호와 서로 다른 이유는 서양인들에게 알려진 혹은 구전되어 기록되면서 변형된 경우이다.
▶ 왜? 중국과 일본을 우리나라를 자신들의 방법으로 부를까?
* 엑소님 : 자국의 뜻대로 한 지역의 명칭과 민족을 부르는 태도를 의미한다. 물론 자국의 지명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부르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 엔도님 : 한지역의 지명을 영문국호로 공식화된 방식으로 부르거나 해당 나라의 발음으로 표기 및 지칭하는 방식을 말한다.
▶ 대한민국과 KOREA는 어떻게 결정되었나?
고종은 1897에 대한제국(大韓帝國)을 선포한다. 이 사실에 대해 주한 미국과 영국 영사들은 본국에 조선의 국호가 Taihan으로 변경됐음을 보고하면서 각각 Corea와 Korea등으로 관행적으로 기록했다. 프랑스역시 관행대로 Coree로 표기했다. 이즈음 우리 영문국호는 Korea와 Corea가 혼용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1919년 상해 임시정부에서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국호가 결정되고 광복이후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이를 그대로 계승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KOREA는 남과 북에서 모두 동일하게 사용한다.
◎ 고문서에 나타난 고려(高麗))국호의 표기 변천
|
연대 |
기록문서 |
기록자 |
국호 |
배경 |
|
1246년 경 |
몽골인의 역사 Historian Mongolorum |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카르피니 |
Solanges |
몽골인들이 말하는 고려발음 (몽골어 : Solangi 무지개) |
|
1255년 |
몽골제국 여행기 |
프란체스코회 루브룩(Rubruck) |
Solanga * Caule |
高麗의 중국어 발음 Gaori 중국인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 |
|
1300년 경 |
동방견문록 |
마르코폴로 |
Cauli |
|
|
~200년 간 |
동방견문록이 널리 퍼지면서 번역본이 나옴 |
언어의 특성에 따라 Cauly, Carli, Kauli, Kaori | ||
|
1311년 |
집사 (jami al-Tawarik) |
라시드 앗 딘 |
Kao-li |
KaoKau-ri (고구려) |
|
1375년 |
카탈루니아 지도 (Catalan Atlas) |
애브레햄 크레스크 Cresques |
Great Caulij |
|
|
1516년 |
키타의 서 Khitayname |
아크바르 Ali Akhbar |
Kao-li |
아크바르가 중국을 여행한 시기는 조선 연산군 혹은 중종시기이나 여전히 고려(高麗)의 중국식 발음으로 표기 |
|
1515~ |
동양요록 (Suma Oriental) |
피레스 Tome Pires |
Gores |
|
|
1557년 |
논평 (Commentario) |
브라즈 알부케르크 |
Gores |
인도 서해안 포르투갈 2대 총독 |
|
1548년 |
로마 예수회 문서 |
토레스, 란칠로토 |
Coree |
일본인으로부터 고려(高麗)의 일본식 발음인 "Gorei"를 로마자로 Coree로 표기 |
|
1571. 2. 4 |
빌렐라 신부 편지 |
빌렐라 (Gaspar Vilela) |
Coray |
조선 선교책임자 빌렐라의 편지 Coray 高麗의 일본식 발음을 표음 |
|
1571. 11. 3 |
Corea |
빌렐라가 예수회의 보르하(Francisco Borja) 총장에게 보낸 편지 | ||
|
1576. 5. 1 |
중국에 관한 보고서 |
아우구스티누스회 마틴 라다 (Martin de Rada) |
Taucian Chausien |
조선을 두 가지 방식으로 보고서에 표기 朝鮮의 중국식 발음 “차오시엔” |
|
1578.11. 8 |
포루투갈로 보낸 편지 |
프레네스티노 신부 |
Coria |
Cori + 나라이름 접미사 a 가 붙음 |
|
1583년 1590년 |
일본사 (Historia de Japam) 및 편지 |
발리그라노 Alessandro Valignano |
Coray Coria |
임진왜란과 관련한 언급 |
|
1595년 |
린스호턴의 동양 수로기 “동인도지도” |
아르놀뒤스 랑그렌 |
COREA Conray |
|
|
1598년 |
나의 세계일주기 |
카를레티 |
Corea, Cioscien | |
|
1602년 |
<곤여만국전도> |
마테오 리치 |
朝鮮 |
|
|
1668년 |
스페르에르호의 불운한 항해표류기 |
하멜 |
Coree, Tiocenkouk | |
|
1671년 |
KOREA - 독일어판 | |||
|
1692년 |
지아폰 섬과 꼬레아반도 |
코로넬리 |
Tiocencouk, Corea | |
|
1734년 |
러시아 제국 총도 |
키릴로프 |
Korea |
처음으로 지도에 등장한 KOREA |
|
1738 ~ 41 |
중국역사지리지 (영국) |
뒤 알드 |
Korea |
|
|
1739, 44 |
중국지도 |
하시우스 |
ChaoSien, Caolikove, Corea | |
|
1808, 14 |
스페르에르호의 불운한 항해표류기 (런던 영역) |
하멜 |
Korea |
|
|
1840년 |
고라이반도지도 |
지볼트 |
Koraischen |
|
|
1845년 |
꼬리지도 (Carte de la corie) |
김대건 |
Corie |
|
|
1885년 |
조선팔도 지도 |
지볼트 |
KOORAI, Tsio-sien phal to dsi to | |
|
1882년 |
조미수호통상조약 |
- |
Corea, Kingdom of Chosen, Government of Chosen | |
|
1886년 |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 코리아 스케치 |
로웰 |
Chosun |
|
|
1897년 |
문서 |
미국 공사관 |
Tai Han |
국호 대한 개칭에 대한 답신 |
|
미국 영사관 |
DaiHan | |||
|
독일 영사관 |
Tai Han | |||
|
1889년 |
한청통상조약 |
- |
大韓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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